아마미야 카린
아마미야 카린(일본어: 雨宮 処凛, 1975년 1월 27일~)은 일본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.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과 반빈곤 네트워크 부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, 현재는 프레카리아트 문제에 전념하고 있다. ‘아마미야 카린’은 필명이며, 이것은 록 기타리스트인 고토가와 린에서 따온 것이다.
생애
[편집]성장기
[편집]아마미야 카린은 홋카이도 다키카와시에서 출생하였으며, 두 살 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앓아 왔다. 이로 인해 사춘기 때에는 왕따를 당하고, 등교 거부·가출을 하기도 하였으며, 이 과정에서 비주얼계 밴드 팬 활동을 하였다. 대학 입학에서 미대를 지망했으나 떨어져 재수하였다. 그 사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으나, 몇 번 해고되면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.
이후 구체 관절 인형 작가인 아마노 카단의 작품에 심취해. 아마노의 동료인 오시다 료의 제자로 들어갔지만, 점토를 반죽해서 인형을 만들 때 아토피성 위염이 발생해 이 또한 좌절되었다. 그래서 리스트 컷(손목을 통한 자해 시도)을 반복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고 한다.
우익 입문
[편집]20세 때 자신의 삶을 성찰하다 "현재의 일본은 이상하다"는 생각이 든 아마미야 미야는 우익 활동에 몸을 던진다. 우연히 읽은 '고마니즘 선언'의 작가 스즈키 쿠니오를 이벤트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, 스즈키의 저서를 읽고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일수회에 소속된 미사와 치렌을 만나서 2년 동안 우익단체에 가입하여, 미사와 치렌의 문하생으로 활동한다. 우익 활동가 시절('초국가주의 "민족의 의사"동멩)에는 극우적 펑크 록 밴드인 '유신적 성숙', '대 일본 테러' 등을 결성해 보컬로 활동하였다. 이 과정에서 그녀의 로리타 패션으로 대표되는 외모와 기존의 우익에 대한 이미지, 그리고 활동 내용의 간격으로 인해 '미니스커트 우익(일본어: ミニスカ右翼 미니스카 우요쿠[*])'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었다.
좌익으로의 전향
[편집]이후 사상적 전향을 통해 좌파 활동가가 되었다. 사상 전환의 계기는 쓰치야 유타카 감독의 다큐멘터리 '새로운 신'에 참여하게 되면서 찾아왔다. 이후 자신의 경험을 쓴 '생지옥 천국'으로 주목 받으며 사회 활동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한다. 새로운 시위 형식인 '사운드 데모'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고 작가로도 꾸준히 활동했다.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 당시 내한하였으며, 《성난 서울》[1] 이란 서적을 통해 대한민국에 알려졌다.
저서
[편집]주요 저서로 《생지옥 천국》, 《자살의 코스트》, 《살게하라! 난민화하는 젊은이들》, 《살아내기의 어려움에 대하여》, 《살기위하여 반격하라》 등이 있다.